“짱구식당 있었잖아.”

 우리가 태풍으로 인해 이틀간 칩거를 한 끝에 모처럼 제대로 남해 여행을 즐기기로 한 날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아이에게 양떼목장 체험을 시키고, 독일마을에 가서 기념품도 사고, 카페도 들르고, 지난번에 좋은 기억이 있던 농가섬까지 방문해서 알찬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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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도통 낮잠을 자지 못하니 애는 애대로 힘들고, 우리는 우리대로 물배가 너무 차서 힘들었다. 나는 하루 일정이 길 것이라 생각해서 아침도 걸지게 먹고 나온 판이었다. 아무래도 온 가족이 모두 저녁 식사를 미루고, 숙소에 가서 쉬다가 오기로 했다.

 그러나 아뿔싸, 일곱시에 도착한 식당의 입구엔 “재료소진”이 딱하니 적혀있었고, 우리는 늦은 시간에 낮잠에 들었다가 잠에서 깬데다가 배가 고프다며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며, 급하게 플랜B로 향해야했다. 어디 가지. 어딜 가지. 그러다가 아내가 아! 짱구식당이 있었다며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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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짱구식당의 경우, 일정으로 잡았던 곳은 아니고 남해읍 내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할 경우에 대비해 몇군데 골라놓은 곳 중 하나였다. 2인에 5만원이면 저렴한 것은 아닌데 가성비가 너무 좋다는 평가가 다수. 오늘의 해프닝이 아니었다면 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곳인데다, 가격도 살짝 부담이라 급하게 차를 몰아서 오긴 했지만, 식당에 들어와서 메뉴판을 보니까 어어, 살짝 겁은 났다.

 그러나,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사장님은 난생 처음 본다. 10여개의 테이블이 우리가 식당에 들어간 뒤 이내 거의 가득 찼는데,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앉은 자리는 에어컨 바로 아래인데 괜찮나며 말을 거시더니, 자리를 옮겨앉자마자 우리 아이를 보고 미니초코바를 건내신다. 와우! 애가 배고파서 힘들어했는데, 스트레스를 달래어주기에 딱 좋은 선물이라 감사히 아이에게 먹였다. 우리는 2인세트를 주문했다. 경황 없이 급하게 시켜놨는데 탕 혹은 조림이 갈치조림과 매운탕, 멸치쌈밥 중에 고를 수 있는 것처럼 메뉴판에 적혀있다. 호다닥 사장님께 가서 탕 혹은 조림을 고를 수 있는 것이냐 여쭈니,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갈치조림이라고.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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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잠깐의 기다림 끝에 상이 깔리는데, 야 곱다. 일단-은, 반찬이 머우대에 알배추, 멸치에 마늘쫑.

“어 사장님 이거 뭐죠? 우리집에선 이거 김치에 넣는데.”

“아 이거 청각입니다. 김치에 옇고 하죠.”

“아아 맞다 청각.”

 야이, 그런데 계란말이 뭐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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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말이가, 그으- 새로했네요? 뜨끈하네요? 여기가 밥집이 아니라 사실은 남해시장 안에 있는 술집에 가깝다. 보통 밥집이라면, 계란말이 같은 이런 반찬은 미리 좀 만들어놓고 차게 해서 내지만 여기는 아무래도 술집이라 주당들이 찾아와서는 계란말이 리필을 외칠 것이고, 그러다보니 술집 스타일로다가 이렇게 바로 바로 해서 내는 게 흔하긴 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게, 허기가 졌는데 벌써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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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전어가 지금 먹을 철인가요?”

“전어요? 네 가을은 꾸버서 먹고요. 지금 먹을 철입니다.”

“아아.”

 전어회가 때깔부터 맛깔까지 곱다. 야, 한입 딱 입에 물어도 고소함이 입에 확 번진다. 그런데다가 양념이 예사롭지가 않은게 매콤하고 달큰하고 향긋한게, 딱 맛난 전어회다. 여기가 시장통인지라, 바로 바로 시장에서 살아있는 싱싱한 놈으로 공수를 해서 상을 차릴 것이다. 그런데다가 손질도 깔끔하게 해서 전어를 얇게 썰어낸 터라 뼈가 크게 입에 걸리지 않고 곱게 씹혀 넘어간다.

 일단 전어무침은 만족. 아무리 양식이 되어서 저렴한 어종이라고 해도, 광어가 싸다고 맛없는 생선이 아닌 것처럼, 전어가 저렴하다고 맛없는 생선이 아니지. 게다가, 다른 메인인 이 생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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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건 잔뼈까지 씹어서 드시고예.”

“어 이건-…”

“서댑니다.”

“아 서대.”

 하마트면 박대냐고 물을뻔했다. 서대! 남해의 대표어종. 꾸덕하게 말린 놈인지라 짭짤하다. 딱 밥도둑이다. 짭짤하고 바삭하고 짭쪼름하고 그러면서도, 비린내라곤 하나 없는 맛난 생선. 예전엔 한두룸씩 꿰놓고 팔던 쭈꾸미나 박대가 이제 서해안에서 저렴한 생선이 아니듯, 남해 도처에서 잡히는 서대도 이제 저렴한 생선이라고는 볼 수 없다. 적당한 가격에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맛난 음식.

 그런데 진짜 밥도둑이다. 짭짤함과 바삭함이 어우러져, 나같이 잔뼈까지 씹어먹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거 한 접시로도 밥 두공기는 뚝딱이겠다. 다만, 좀 너무 짜다?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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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것도 사진 한번 찍으실랍니까.”

“네.”

 우리가 사진을 찍으며 먹는 걸 보신 사장님이 마지막 메인으로 내오신 갈치조림을 먼저 국자로 떠보여주신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다음엔, “한번 국물도 간 좀 보실랍니까.” 라며, 그릇에 국물을 담아내 맛을 좀 보라고 주신다.

 내가 반찬마다 꼬치꼬치 묻는 것에 귀찮아하시긴 커녕. 이 사장님 장사천재시다. 여사장님이 주방을 책임지고 남자사장님이 혼자서 10개 테이블 규모의 홀을 책임지시는데, 쉴 틈 없이 돌아다니면서 계속 필요한 건 없는지 먼저 물으시고 반찬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는, 먼저 음식을 자랑하시는듯, 우리에게 간을 보라고 떠보여주신다.

 이 갈치조림은 냄비가 세숙대야 냉면 정도 크기는 되는데, 중간 사이즈 갈치가 두마리 정도는 들어간듯 보인다. 퍽 많은 갈치가 들어가서, 단품이 3만5천원. 그 맛은,

“어우 심심하다.”

 심심하다. 많~이 심심하고 담백하다. 게다가 국물이 자작하긴 커녕 넉넉하게 끓여져나와 팔팔 끓이면서 간을 맞춰야 하나 싶은. 그러나, 한번 상차림을 다시 생각해보면, 우선 전어회무침, 밸런스 딱 잡힌 맛깔난 양념에, 서대, 짭짤한 밥도둑에, 갈치조림은, 그냥 시원~하고 심심하니, 조미료 1도 들어가지 않은 깔끔한 맛.

 그러니까 이 심심하고 시원하기 그지없는 갈치조림도, 전체의 상차림의 조화를 보면 딱 알맞는 느낌이다. 계별별로 다양한 회무침으로 입맛을 돋우고, 계절별로 다양한 생선구이로 짭짤하게 밥과 삼킨 다음, 계절별로 각기 다른 매운탕, 갈치조림같은 갈치국으로, 시원하게 피니시. 어우. 차도 몰아야하고 술을 못시키는 게 한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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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밥은 더 안드십니까.”

“아 하나만 더 주세요.”

“반찬은 더 안드려도 될까예.”

“아 멸치랑, 이거 무김치랑, 계란말이랑, 아니 이거 무김치 너무 맛있는데요.”

“아 이 무김치가, 쌀뜨물로 담궈놓은 다음에, 싹 건져내가, 바닷물로 절여서 간을 합니다.”

“아아.”

“계란말이는 지금 없는데, 전어회무침 좀 더 드릴까요?”

“네?! 네!!!”

 시상에나. 전어회무침이 2/3가량이 그대로 새로 나왔다. 덜덜덜. 아니 남해가 보물섬이라더니, 여기에 진짜 보물이 있었네. 5만원으로 이게 웬, 값으로 따지기 어려운 음식들로 배가 터져서 나가게 생겼다. 그리고 사장님이 내오신 밥은

“아 뜨거!”

“응?”

“아 공기밥 너무 뜨거워. 오빠 이거 남은 거 가져가.“

 그러니까…지금 시간이…밤 8시가 넘었는데…새밥요? 아니 밥이 촉촉하고 델 만큼 뜨거워?

 아니…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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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말이 지금 좀 드릴까예? 지금 좀 만들어가.”

 아니…사장님…살려주세요…

 잠시 뒤에 사장님은 작은 베개 사이즈로 두툼하게 구워진 계란말이를 집게로 들고서 주방에서 나오셔서, 테이블마다 가위로 썰어서내주셨다. 우리가 새로 받은 계란말이는, 뜨거운 김이…방금, 공기밥에서 났던 모락모락한 김이 계란말이에서…

“아 오빠 너무 배불러.”

“너는 지금 그릇 하나를 갈치 시체로 다 채워놨구나.”

 내가 서대와 전어, 각종 반찬을 해치우는 동안 갈치러버인 아내는 국그릇에 가득 갈치를 산처럼 쌓아서 발라먹고 있었다. 5만원으로…5만원에…맛있고 귀한 음식들로만 가득.

 그리고도 장사천재 사장님은 맥콜을 우리 테이블에 올려놓으신다. 우리 따님께는 계속 아가씨, 아가씨라 부르며 22개월에 맞지 않는 융숭한 대접을 해주시며.

 그러니까 이..짱구식당은 말이다. 음…남해에서 몇 안되는 늦은 시간까지 식사가 가능한 식당이다. 가격은 2인에 5만원. 식당이라기보단 술집에 가까우나 환하고 밝은 식당이다. 우리 말고 술을 마시는 테이블은 동창회처럼 보이는 나이든 아저씨들이 조용히 술을 즐기시는 모습. 나머지 테이블은 우리와 같은 여행객들이 더 많았다. 내가 가본 식당 중에 여기보다 사장님의 접객이 우수한 곳이 없다. 적은 수의 테이블이 아닌데도 부지런하게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완벽 그 이상의 만족을 주셨다. 너무 배가 불러 추가 주문을 하기 어려웠을 만큼. 또, 너무 깔끔한 메뉴들이라 음료수를 애초에 시킬 생각도 못냈을 만큼.

 메뉴판에도 적혀있지만 카드결재시 공기밥 별도. 그런데, 나는 촉촉뜨끈한 새밥을 받아놓고 이걸 가지고 트집을 잡진 못하겠다. 세상에 이런 밥집이 없다. 그것은 논외로 치고 딱 하나의 단점은, 무조건 과식을 하고 나오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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