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지텐. 텐동 먹으려고.”

“흐음.”

 아내의 말에 따라 네비게이션을 찍기 시작한다. 통영에 온지 고작 이틀. 아직 거리도 낯설고 동네의 생김새도 파악되지 않는다. 깜깜이처럼, 길을 알지못하고 네비게이션의 지도를 보니 서너개의 섬이 맞닿은 곳에 저마다의 골목이 생겨나 있는 제법 우스꽝스러운 곳, 통영의 한쪽 끝자락의 식당을 가르킨다.

“니지가 무지개란 뜻이야. 무지개덮밥집이란 뜻이지. 좀 뭐랄까 정감있는 식당같네 우리말로 하니.”

“아하.”

 덮밥. 서민의 음식이다. 거기에 무지개란 이름까지 붙으니 영락없는 동네맛집 이름이다. 그런데 그 니지텐이란 곳에 오니 실제로 그렇다. 작다란 언덕배기를 잠시 오르니 날씨는 청명하고, 동네는 소담하다. 그런 곳에 무지개가 콕 박힌 아기자기한 그림이 차양에 심어져있다.

“어서오세요.”

“네 셋이요.”

“아기 의자 드릴까요?”

“아- 아니 괜찮아요.”

 괜찮지 않은 쪽은, 아이를 데리고 텐동집에 왔을 때의 유증기다. 겨울이고, 환풍은 제한될 것이다. 홀의 한 가운데에 가마솥이 자리해, 기름을 보글보글 끓이고 있다. 어른이라면 괜찮겠지만 아이에게는 안좋을 수 있다. 성인의 1/3에서 1/5, 나에 비하면 1/7 정도 되는 체구의 아이이니 폐는 그보다 얼마나 작고 여릴까. 홀의 구석에 자리해 아이를 품에 숨긴다. 다행히 오픈하고 얼마 안된 이른 점심 시간이라 홀에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그 점에 안심하며 아내는 메뉴를 고른다.

“오빤 뭐 먹게?”

“나?…그냥 기본.”

“그럼 스페셜도 하나 시킬게.”

“응.”

 아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 메뉴를 볼 틈도 없고 아내가 시키는대로 그냥 두었다. 아내는 스페셜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가격이 퍽 헐하다. 만원이라. 비싸면 비싸다지만, 또 싸면 싼 가격.

 텐동은 애매한 음식이다. 일본에선 저렴한 음식의 대표로 규동, 우리말로 하자면 소고기덮밥이 꼽힐 정도인데 같은 덮밥으로서 텐동 역시 저렴한 국민 음식이다. 같은 섬나라인 영국에서 피쉬앤칩스가 그렇듯.

 그런데 또 그와 다를 바 없이 삼면이 바다인 우리 나라에 와선 이게 외국음식의 껍데기를 쓰고 제법 비싸게 팔리는 판이니, 기름을 관리를 잘 하고 깔끔하게 맛있게 만들어내면 가격이 제법 비싼 것도 이해는 된다만, 저렴한 국민음식으로 국밥의 옆줄에 서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또 국밥이 만원씩 하는 세상이니 이쯤되면, 만원짜리 텐동이라면 저렴하다고 해야할까. 잘 모르겠다 물가가 이리 오르는 판이니.

 흠. 그런데 어렵쇼.

“만원인데 양이 많네.”

“응. 오빠가 장어 먹어.“

“….? 그럴거면 왜 굳이 스페셜을…?“

“비교해봐야지.“

 아내는 따악히 장어를 좋아하진 않는 사람. 나는 장어보다는 붕장어, 일본어론 아나고를 좋아한다. 그런데 텐동 집인데 우나기, 즉 민물장어가 아니라 붕장어를 쓴다. 맛의 차이는 없으니 굳이 우나기텐동을 뽑아낼 필요는 없을 터다. 그렇다면 장어튀김 반마리 하나로 5천원의 차이가 난다는 것. 붕장어도 기본 단가가 있으니 가격은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양이 많다. 구성이 다채롭다. 만원인데 새우가 둘, 제철생선, 갑오징어 튀김이 올라가고 꽈리고추에 연근에 온천계란에…많고, 다양하고, 맛있다.

어쩌면 이게 통영의 맛이랄까. 다도해의 풍성한 해양자원 덕분에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풍성한 한 상. 이 정도 알찬 한그릇이라면, 일본에서처럼 국밥에 버금가는 만원짜리 국민음식이라 부를만 하다. 물론 여전히 만원이라는 돈이 부담이 없는 한끼 가격이랄 순 없겠지만. 갑오징어랑 제철생선은 조금 놀랐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온 대왕오징어도 아니야!

 통영을 와서 보니 제주도가 비싸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같은 바다여도, 제주도 바다는 풍랑이 심해 바다에서의 양식은 불가하고 조업도 제한이 생긴다. 그래서 수산물도 마냥 저렴하지 않다. 땅이 척박해 농사도 제한적. 그러나 통영은 조업이든 양식이든 훨씬 나은 입지에 농산물은 육지니 말할 것이 없다. 여행지로서 통영은 저렴하게 맛있는 수산물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곳이다. 그런 곳이니, 이런 화려하기까지 한 텐동이 만원, 만 오천원. 이쯤이면 한그릇으로 배불러야할 덮밥으로서 여간 훌륭하지않다. 딸아이에게 밥을 절반정도 양보해도 넉넉했다.

 무지개덮밥집이라는 그 이름처럼, 낯선 일본음식으로서가 아니라 다도해의 중심부 통영에서의 익숙한 집밥과 같은 한끼. 이름은 잘 지은 것 같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식사를 마무리할때쯤에는 작지는 않은 홀이 꽉 찼고, 이제 기름솥이 쉴 틈없이 빗소리를 내기 시작한다.